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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선생은… 왜… 사시오?”
2013년 경.
자존감 바닥 찍고 멘탈 탈탈 털린 상태에 있을 때
온라인 상으로 알고 지내던 블로그 이웃 한 분이
집에 방문한 적이 있다.
일찍부터 영적인 길을 가시던 그 분과의
첫 대면에서 받은 질문이 저것이다.
스스로 한 번도 품어보지 못했던 질문이라
당황스러워하며 더듬더듬 뱉은 나의 대답은,
“글쎄요…남에게 피해주지…
않으려고… 사는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왜 그랬는지 스스로 납득하기 어려운 대답이라 여겼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일견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견이 갈리는 상황에서 나의 견해를 밝혀 더 분분하게 만들기보다
그냥 그들이 내리는 결정에 따르는 걸 편하게 여긴다거나,
마트 엘리베이터에서 카트를 밀고 누군가 들어오면
그에게 공간을 내주기 위해 내 몸을 벽에 바짝 밀착한다거나,
어린 시절의 아이들에게
“내 이익을 취하기 위해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는 훈육을 일삼았던 걸 보면
나를 낮추고 남을 위하는 삶, 남에게 피해되지 않으려는 삶을 살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아니 뭐 그럴 수도 있다고 치자.
문제는...
‘나 이런 노력하고 있소~’ 하며
남들이 그걸 알아주기 바랬다는 거다.
그것도 속으로만...
남들은 알 턱 없는 이 이슈로 혼자 북 치고 장구치고 하다,
지쳐 실망하고, 도망치고, 그때마다 물귀신에 발목 잡혀설랑은
깊은 동굴 속에서 자책과 원망의 도가니탕에 다이빙~ㅠㅠ
‘나는 세상 사람들과 너무 달라.
나의 다름을 저들에게 이해시킬 수 없어.
그냥 저들과 거리를 두고 혼자 사는 게 낫지.
이렇게 된 건 다 늬네들 때문이야’ 라며
혼 밥 즐기는 '고독한 미식가'나
혼 삶 즐기는 ‘나는 자연인이다’의 열혈 시청자가 되었다는....^^;;
2
최근 에세네 4 바디 힐링 스쿨에서 마음공부를 시작하며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자존감을 세우니
그런 뻘짓을 하지 않게 되었고 덤으로
걸리적거리는 ‘척’까지 벗어던질 수 있게 됐다.^^
남 보기에 괜찮은 척, 젊잖은 척, 쿨한 척 등,
몇 달간의 노력으로 걸리적거리던 ‘척’들을 벗어나
홀가분함과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었는데,
그것도 잠시.
보름 전부터 갑자기 물귀신의 출몰이 잦아지는 것이 아닌가?
그러다 코로나 거리 두기 강화로 인해
야심 차게 준비했던 새 프로그램들이 물거품 되고,
애써 외면하고 있던 생존 불안이 올라오면서
힘들게 회복했던 자존감이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졌다.
그리곤, 막~ 예전처럼
사람들에 대한 의심, 원망이 돋기 시작하는데...
자뻑하며 방심하다 당해서인지
이 물귀신 반격이 곱절로 아프게 느껴졌다.
어느 순간 분노를 이기지 못해
의자를 집어던지고, 유리 벽을 주먹으로 내리치고
바닥에 널브러졌는데…
3
고타마 붓다의 제자들은 그의 가르침을 듣고 수행함으로써
'아라한'이라는 이상적인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 아라한의 경지에 도달하는데
4향4과라 불리는 8종의 위계(位階)가 있다.
예류(豫流) · 일래(一來) · 불환(不還) · 아라한(阿羅漢)이라는 4개의 층위가 있고,
과(果)를 향해 수행(修行)해 가는 단계 향(向)과
도달한 경지인 과(果)로 나뉘어
모두 4향4과라 하고 일컬어 4쌍8배(四雙八輩)라 하는데,
이는 구원을 말하는 천주교의 7 Dimension 그리고
영성가의 7개 차원 어센션과도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다음 단계로의 성장은
올라간 만큼 다시 아래로 더 내려갔다 오는 과정을 포함한다는 것이다.
지난 11월 3주간의 헤일로 선생님 방한 워크숍 중
학생 워크숍 뒤풀이 자리에서 귀에 딱! 걸린
이 가르침이 떠올랐다.
아! 어쩌면...
평생을 남을 위한 삶, 남에게 영향받는 삶을 살아왔는데
이제 드디어 영향받지 않고 살 수 있는 힘이 생긴 건가?
스테이지 1 클리어하고, 스테이지 2로 넘어가는 단계?
그랬다.
최근에 나를 괴롭힌 물귀신은 스테이지 2에서 넘어야 할 산.
그 산을 넘기 위해 깊은 그림자를 확인하는 과정,
'남에게 영향받지 않는 삶'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현재 내 모습을 적나라하게 4 바디로 느껴보는 필연적인 과정이었던 거다!
뒤늦게 통찰이 왔고, 그러자 4 바디에 평화가 찾아왔다.
물귀신에 잡혔던 고약한 자책감은,
다시 물귀신을 만나더라도 무너지지 않고
잘 넘길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으로 바뀌었다.
기분 좋은 전환의 순간.
이제 누가
"왜… 사시오" 한다면
"내 안의 신성을 만나고 그 여정에서 어센션을 이루려구요" 하고 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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