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우리 집은 #동일한의원
1층은 병원, 2,3층은 입원실로 계획되고 지어졌으나
여의치 않아 2,3층은 살림집으로 개조해서 살았다.
우리 4남 1녀와 함께 할머니, 삼촌, 고모,
약제사 형과 가사도우미 누나까지 대식구가 복작복작.
아버지 진지만 2층으로 배달하고
나머지는 좁은 부엌에서 돌아가며 밥 먹는 식사 풍경.
매일 아침이면 들기름 향 섞인 기름 냄새가 온 집안에 진동한다.
단백질 보충에 필수라면서 아버지 진짓상에만 올려지는
#계란후라이 두 개 (요즘은 #달걀프라이 라고 하지만 당시에는 계란으로 불렀다)
아버지만 은수저를 쓰시는데 수저 끝이 항상 새까맸다.
이유는 바로 이 #계란후라이_노른자_반숙 때문이다.
너무 많은 식구 탓에 이 계란후라이만큼은 아버지만 잡수셨고
매일 냄새만 맡고는 먹지 못하는 고문을 오랫동안 겪은 터라
어른이 되어서는 나도 꼭 두 개의 계란후라이를 먹었다는...ㅋㅋ
노른자위는 반드시!!! 당당한 위용으로 살아 있어야 한다.
노른자위가 터지기라도 하면 아버지의 불호령에 다시 대령해야 한다.
어머니 혹은 가사도우미 누나 혹은 아줌마들이
이 계란후라이 때문에 받았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계란후라이를 대하는 아버지의 자세는
거의 예술의 경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
매우 진지해서 심지어 경건해 보이기까지 했다.
손으로 뽑기 오려 먹듯 노른자위 주변 흰자위를 발라 먹고
마지막엔 노른자위를 감싼 흰자위를 절묘하게 잡아 한 입에 쏘~옥.
농구의 3점 슛 위치에서 던진 공이 림을 스치지 않고 클린 샷 되는 느낌이랄까...?
가끔 흰자위 오리다가 노른자위를 스칠라치면
연약한 노른자위는 힘없이 스르륵 스러지는 실로 안타까운 상황이 연출된다.
당당함을 잃은 노른자위는 숟가락으로 해결하셨는데
숟가락으로 열심히 긁었으나 접시에 남겨진 잔해는 참혹했고
참혹함은 은수저 끝에 문신처럼 시커먼 자국으로 남았던 거다.
1987년, 목동 아파트로 이사 가고 나서야
아버지와 한 상에서 식사하게 되었고.
손 위 누나 형들이 모두 출가한 이후,
아버지 계란후라이 부치기는 내 담당이 되었다.
머시든 하면 열심히 하는 성격인지라...
내가 만든 계란후라이는 대부분 합격! ㅋㅋ
덕분에 지금도 잘 부친다.
방법은 간단하다.
적당히 달궈진 (팬 온도가 매우 중요하다) 팬에 기름 두르고 계란을 올린다.
소금, 후추 적당량 투하하고 흰자위가 적당히 익을 때까지 기다린다.
한 위치에 그대로 두면 위치에 따라 익는 속도가 다르므로
적당히 위치를 바꿔준다.
흰자위가 어느 정도 익으면 바닥이 노릇해지면서
이른바 #밑빠위촉 (밑은 바삭하고 위는 촉촉한) 상태가 되어
노른자위를 젓가락으로 들어 올릴 수 있는 내구력을 만들게 된다.
당당하기 짝이 없는 반숙 노른자위를 입에 물고 흰 밥 한 입,
여기에 김치나 겉절이 한 조각, 아니면 스팸 한조각도 좋다.
그리고 김치찌개(국)나 된장찌개(국) 한 술 더하면
입안에서 세 가지 서로 다른 재료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하이브리드 식감은... 그야말로... 캬~~~
#강남_굿댄스 수업을 열정적으로 한
월욜 밤에는 밤참을 찾기 십상.
지난 월욜이 그랬는데 무얼 먹을까 고르다가
계란후라이 당첨.
근데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 소환되면셔!
얄밉게 혼자 잡수시던 게 생각나면셔!
에라이 썅~ 하며
돌발적으로 세 개나 부쳤는데...
역대급 맛이었다. 캬캬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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